2008년 대충 정리
Posted 2008/12/31 11:37, Category under: 사는 이야기/일상 이야기뭐랄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 웃고 많이 울었던 2008년이었다. 언젠가부터 개인의 일들을 여기에 포스팅하는게 꺼려져버린 탓에...하지만 2008년을 마감하면서 하나의 로그를 남겨둔다.
1. 연초부터 엄마께서 지주막하출혈로 입원하셨고, 큰 수술을 감당하셔야 했다. 우리 가족도 노심초사하며 엄마의 건강이 회복되길 빌었고, 당시에 뱃속에 있던 우리 인서도 빌어준 덕에 엄마의 건강은 대부분 회복되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부끄럽게도 난 결혼 이후에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는 처가댁 식구들이 그 시발점이 되었지만, 서울에 있는 아들딸 생각에, 당신 손녀를 보고싶은 마음에 영상통화로 인서를 보고싶어하시는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할때면 내가 이제 아버지 당신의 위치가 되었다는 생각에 당신이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니. 언제 당신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끝까지 안될 것 같다. 그게 자식이니까.
2. 인서의 탄생. 2008년 3월 28일, 햇살 좋은 봄날 오후에 인서가 태어났고, 인서의 첫 울음을 듣고, 탄생의 순간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조그만, 새로운 생명이 내 품으로 들어온 순간은 세상 어느때보다 기뻤다. 부모가 된다는 것, 아빠가 된다는 것, 그리고 가장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그 이후에야 들기 시작했다. 그냥 기쁘기만 했다. / 사실은 좀 늦게 아이를 가지려 했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고, 나 자신이 아빠가 될 자신도 없었고 어느정도의 사회적 포지션도 가지지 못한 탓에. 하지만 인서는 이렇게 우리 부부의 곁에 오고 싶었나보다. / 지금 인서는 9개월이 넘어 10개월을 채워가고 있다. 10개월간 인서를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면서 이렇게 예쁘게 키워준 와이프에게 가슴깊은, 뒤늦은 감사를 보낸다. 사랑하는 우리 인서. 감기때문에 많이 아프지? 얼른 나아서 아빠랑 엄마랑 아빠빠 엄마마 하면서 재밌게 놀자꾸나. 사랑한다 우리 딸.
3. 이직. 원래 이직을 2008년 중반까지 마무리 하려고 했었다. 회사가 가지는 포지셔닝과 하고싶은 일들에 대한 욕심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하게 캐치했던 2008년의 초반부터 이직을 시도했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어 몇개의 포탈과 몇개의 에이전시, 몇개의 제조업체들과 접촉을 했었다.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몇개들중 하나는 될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MB 와 MS 는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연이은 악재와 경제공황등으로 positive contact 를 진행하던 업체들이 대부분 채용을 cancel 혹은 무기한 holding 해버렸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왔다. / 우연한 연이 닿았다.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디자인과 내가 하고싶어 했던 욕심이 잘 맞아 떨어졌다. 물론 2008년보다는 훨씬 더 바빠질 것이고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둘씩 해나간다면 엄청나게 큰 산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4. 2008년도 나름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준, 항상 곁에서 지켜봐주는 와이프와 우리 인서에게 마음 깊은 감사를. 그리고 전화와 메신저로 항상 안부를 물어봐주시는 지인들과 별 볼것도 없는 블로그를 구독해주시는 많은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09년에도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더불어 이명박과 강만수의 급사와 국회의사당 대폭발도 기원합니다.
Happy New Year !!!
1. 연초부터 엄마께서 지주막하출혈로 입원하셨고, 큰 수술을 감당하셔야 했다. 우리 가족도 노심초사하며 엄마의 건강이 회복되길 빌었고, 당시에 뱃속에 있던 우리 인서도 빌어준 덕에 엄마의 건강은 대부분 회복되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부끄럽게도 난 결혼 이후에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는 처가댁 식구들이 그 시발점이 되었지만, 서울에 있는 아들딸 생각에, 당신 손녀를 보고싶은 마음에 영상통화로 인서를 보고싶어하시는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할때면 내가 이제 아버지 당신의 위치가 되었다는 생각에 당신이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니. 언제 당신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끝까지 안될 것 같다. 그게 자식이니까.
2. 인서의 탄생. 2008년 3월 28일, 햇살 좋은 봄날 오후에 인서가 태어났고, 인서의 첫 울음을 듣고, 탄생의 순간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조그만, 새로운 생명이 내 품으로 들어온 순간은 세상 어느때보다 기뻤다. 부모가 된다는 것, 아빠가 된다는 것, 그리고 가장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그 이후에야 들기 시작했다. 그냥 기쁘기만 했다. / 사실은 좀 늦게 아이를 가지려 했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고, 나 자신이 아빠가 될 자신도 없었고 어느정도의 사회적 포지션도 가지지 못한 탓에. 하지만 인서는 이렇게 우리 부부의 곁에 오고 싶었나보다. / 지금 인서는 9개월이 넘어 10개월을 채워가고 있다. 10개월간 인서를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면서 이렇게 예쁘게 키워준 와이프에게 가슴깊은, 뒤늦은 감사를 보낸다. 사랑하는 우리 인서. 감기때문에 많이 아프지? 얼른 나아서 아빠랑 엄마랑 아빠빠 엄마마 하면서 재밌게 놀자꾸나. 사랑한다 우리 딸.
3. 이직. 원래 이직을 2008년 중반까지 마무리 하려고 했었다. 회사가 가지는 포지셔닝과 하고싶은 일들에 대한 욕심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하게 캐치했던 2008년의 초반부터 이직을 시도했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어 몇개의 포탈과 몇개의 에이전시, 몇개의 제조업체들과 접촉을 했었다.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몇개들중 하나는 될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MB 와 MS 는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연이은 악재와 경제공황등으로 positive contact 를 진행하던 업체들이 대부분 채용을 cancel 혹은 무기한 holding 해버렸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왔다. / 우연한 연이 닿았다.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디자인과 내가 하고싶어 했던 욕심이 잘 맞아 떨어졌다. 물론 2008년보다는 훨씬 더 바빠질 것이고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둘씩 해나간다면 엄청나게 큰 산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4. 2008년도 나름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준, 항상 곁에서 지켜봐주는 와이프와 우리 인서에게 마음 깊은 감사를. 그리고 전화와 메신저로 항상 안부를 물어봐주시는 지인들과 별 볼것도 없는 블로그를 구독해주시는 많은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09년에도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더불어 이명박과 강만수의 급사와 국회의사당 대폭발도 기원합니다.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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